2016년 6월 4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행복한가정 가족愛소통



하나님의교회 행복한가정 2016년 6월호 중



부모는 이이를 자라게 하고,
아이는 부모를 자라게 한다.






훈육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



훈육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인내로써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아이에게 절제하고 인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훈육이므로, 훈육을 하는 사람도 인내와 절제는 마땅히 지녀야 할 성정이다.


훈육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진정시킨 후에 해야 한다.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훈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가 겁을 먹고 당장은 말을 잘 들을지 몰라도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다, 아이에게 반항심을 부추긴다.


조사 결과, 아동학대 가해자의 80%가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학대가 아닌 '훈육의 체벌'이라 주장한다.
훈육에 있어 때로는 적절한 체벌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체벌은 반드시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체벌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정도가 지나친 체벌, 분노에 의한 체벌은 온당치 못하다.
체벌이 채찍, 사랑이 당근이라면 채찍보다 당근의 비율이 훨씬 높아야 한다.


몸에 상처가 나도록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폭언과 위협, 방임도 학대에 속한다.
올바른 훈육은 아이가 부모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착과 신뢰다.
먼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자.
그러려면 기꺼이 무릎을 굽혀야 한다.
눈과 눈을 마주하여 자녀의 생각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훈육은 훈육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에게 사랑과 배려, 용서, 인내와 자비가 없이는 자녀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가르칠 수 없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은 자라듯이, 아이에게 베푸는 꾸준한 사랑과 인내는 결코 헛되지 않다.








부모는 기다려주는 사람



부모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열달의 기다림을 시작으로 자녀의 성장 과정 내내 부모는 기나긴 기다림을 이어 간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하고, 글을 읽고, 구구단을 외우기까지 부모는 잠잠히 기다리며, 사춘기가 되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장성하여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면 모쪼록 세상 풍파를 잘 견디기를, 독립하여 출가하고 나념 언제쯤 찾아올까, 이제나저제나 그리움으로 기다린다.


넘어질 때마다 매번 일으켜줄 수도 없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대신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스스로 터득하고 삶의 내공을 쌓아가도록 인내를 갖고 기다리며, 하나씩 성취해 나갈 때마다 기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자식이 환갑의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어리고 서툴러 보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에,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조급해 지기 쉽다.
아이보다 열 걸음이나 앞서 나가서 얼른 따라오지 못하느냐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는 여유를 갖자.


아이는 씨앗이다.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좋은 토양을 제고앟고 때에 따라 물을 주었다면 남아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자라서 어떤 나무가 될지는 씨앗에게 달려 있다.
반드시 커다란 느티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키 작은 사철나무는 사철나무대로, 향기 품은 꽃나무는 꽃나무대로 세상에 요긴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모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일지 모른다.
부모가 자식 때문에 속상할때면 :커서 꼭 너 닮은 자식 낳아보라"고 하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
자녀가 밥을 안 먹거나, 아프거나, 고집을 부려서 속이 새카맣게 타는 동안 부모는 한 뼘씩 자란다.
그렇게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랐을 때 비로소 깯닫는다. 
자신보다 더 아파했을 부모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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